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혹시 2001년에 나왔던 영화 <왓 위민 원트>를 본 적 있나요?
멜깁슨이 광고기획자로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물의 영화였는데요, 저는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 기억으로 최소 3번은 봤던 것 같아요.
(출처: 나무위키)
멜깁슨이 화장실에서 드라이기를 쓰다 감전이 되어서 기절했다 깨어보니 여성들의 속마음이 들린다는 컨셉인데요. 그로 인해 멜깁슨은 여성을 타깃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광고주들 앞에서 PT를 하면 계속 딜을 따내게 되는 ‘승승장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연애를 할 때에는 상대방이 마음을 읽어 연애가 더욱 개선될 수도 있고, 사업에서 거래를 할 때에는 거래 상대방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어떨까요?
투자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더 자신있게 IR을 할 수 있고,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함으로써 투자자들을 혹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3번(시드투자-시리즈A-시리즈B)의 투자 유치를 하게 되었는데요. 금융권에서 직장생활을 오래하다 스타트업을 시작했을 때 사실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금융권 인맥도 있고 하니 펀딩은 문제 없겠지? 라는 자만심도 있었죠.
그러나 증권사가 스타트업의 투자 단계에 참여하는 건 기업이 성장하고 IPO 단계로 갈 조짐이 보일 때라는 걸 알게되고, 본격적인 초기투자 액셀러레이터(AC), 벤처캐피탈(VC) 등을 만나서 IR을 진행했었습니다. 처음 제대로 창업을 하다보니 모든 게 엉성하고 구멍 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리즈 A 때에는 정말 20개 정도의 VC를 만나 PT를 했는데 죄다 물을 먹었죠.
저는 그 때 VC 들에게 물어봤어요. 도대체 내 PPT에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가? 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들이 궁금했던 부분, 미진했던 설명을 보완해 6번 정도 IR DECK을 업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투자를 받고 어떠한 포인트에 집중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얻었던 인사이트가 있다면, IR을 할 때 계속 거절을 받게 되면 심란해 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냥 “도대체 쟤는 무슨 생각으로 안된다는거야?” 라고 반문을 해보는 겁니다.
“도대체 왜 내 발표가 설득력이 없었지?” “내 기술이 문제일까? BM이 문제일까?” 이런 질문들을 투자자에게 던져보는 겁니다. 그럼 의외로 그들이 쉽게 생각을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사업을 하면서 잘될 때도 있었고 힘든 때도 너무 많았고 중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울컥 솟아오를 때도 있었지만, 어찌됐건 하다보니 8년차에 접어들었더라고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의 지식 수준, 경험치를 갖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사업도 운영하고 조직 매니지먼트도 하고, 투자자 앞에서 IR 도 능수능란하게 할텐데… 라고 말이죠!
투자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저는 최근 다양한 초기 스타트업을 보육, 육성하는 기업, 즉 액셀러레이터들과 함께 협업해 컨설팅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지난 3년동안 600개 넘는 초기 스타트업을 만났더라고요.
투자자 옆에서 투자자들이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고, IR 발표를 들을 때 어디에 의문을 갖는지 계속 지켜보다보니, 막연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는구나 라고 여기던 어느날, 씨엔티테크(현재 AC 액셀러레이터 투자 건수 부문 4년 연속 1위 기업)의 대표님이 ‘투자자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실리콘밸리에 출장을 갔을 때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투자자들과 기업을 보는 관점, 스타트업에 대한 접근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더니 대체로 비슷한 사고를 하고 있더랩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너무 신선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대표님께 훅 던져봤죠.
“ 지금 그 생각들을 책으로 엮으면 어때요?”
그리고 최근에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가 출간되었는데, 저는 이 책을 제가 창업을 했던 바로 그 때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투자자가 갖는 4가지의 ‘WHY(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투자자의 질문은 이런 겁니다.
“WHY YOU”
“WHY NOW”
“WHY THIS IDEA”
“WHY ME”
(출처: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즉 한글로 풀어 설명하자면,
“왜 당신에게 투자를 해야 하나요?”
“왜 지금 투자를 해야 하나요?”
“왜 이 아이디어에 투자를 해야 하나요?”
“왜 나에게 투자를 받아야 하나요?”
이러한 화두에서 출발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사실 스타트업들이 그렇게 궁금했던 질문들입니다.
왜 당신에게 투자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하기 위해 스타트업은 어떠한 이야기를 IR에 담아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고, 투자자의 관점에서 내가 가진 잠재력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중요한 인사이트를 주죠.
왜 지금 투자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은 사실 기업의 성장 단계와 맞물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극초기 단계로 아이디어가 최소테스트를 할 수 있는 기준, MVP(minimum viable product) 상태일 때, 기업이 시장에 제품을 내놓아 매출을 만드는 성장 단계일 때 받아야 하는 기업의 가치(밸류에이션)와 투자 단계는 다릅니다. 창업자에게는 나의 위치를 고민해보고, 나는 투자자들에게 어떠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할지 단계별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함을 이야기해주죠.
(출처: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IPG 로드맵 그림)
왜 이 아이디어에 투자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은 스타트업이 도전하는 시장은 성장하는 시장인지, 기업의 핵심역량은 높은지를 함께 고민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책에서는 보스턴컨설팅의 전략인 BCG 매트릭스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기술력이 어마어마하게 뛰어난데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해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어떤 아이디어는 시장의 니즈와 딱 맞아 떨어지면서 무섭게 성장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내 아이디어가 고객에게 받아들여지는 시장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사이트가 있습니다.
(출처: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투자자는 사실 ‘최초의 제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초로 시장에서 수용하는 제품’을 더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왜 나에게 투자를 받아야 하나요? 이 질문도 사실 재미있습니다. 투자자들도 고민을 하는 거거든요. 스타트업 창업자가 여러 투자자들이 있는데 왜 하필 나에게 투자를 받으려 할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이익이 될까?에 대한 생각도 한다는 거죠.
스타트업 창업자 입장에서 투자기관을 골라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하고, 그만큼 투자자도 매력적인 강점을 창업자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에 ‘스마트 머니’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바로 스마트 머니는 “돈에 붙은 똑똑함”을 의미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는 4가지 WHY(왜) 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서, 그렇다면 창업자가 IR DECK을 잘 쓰려면 어떤한 단계로 구성하면 좋은지? 발표를 할 때에는 어디에 강조를 두면 좋은지, 혹은 발표 장표에서 어떤 부분에 투자자가 질문을 던지는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출처: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사실 ‘투자’에 대한 니즈가 높은 기업이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책이라 생각이 될 정도죠!
마케터의 시선
이와 관련하여 마케터의 시각에서 분석해 보자면 ‘생각 엿보기’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고 싶습니다.
제가 초반에 이야기한 <왓 위민 원트> 영화를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건 생각해보면 컨셉이 ‘남의 생각을 훔쳐보기’ 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이미 너무나도 익숙하게 오랜 시간 ‘관음증’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관음증이란 ‘타인의 사적인 활동을 몰래 보는 것’ 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는데요. 얼마나 많은 현장에서 이러한 컨셉이 인기를 끄는지 알면 놀랄겁니다.
시청률 상위를 차지하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 <나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미운오래새끼>를 비롯해 수많은 싱글들의 매칭 프로그램의 기본 컨셉은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기”입니다.
나혼자 산다만 따져봐도 각 연예인들의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어떤 집에 살며 어떤 음식을 차려 먹는지를 살펴보고, 그 영상을 패널이 또 나와서 그 장면을 보고 리액션을 하는 그 장면을 시청자가 보고 웃고 울고 합니다.
TV 속의 TV 속의 또 다른 TV 안에 들어간 3중 구조로 되어 있어 시청자는 그야말고 ‘신’의 관점인 전지적 시점에서 예능을 바라보는 거죠. 그래서 시청자는 연예인의 일상을 보기도 하고, 그 일상에 토를 달거나 리액션을 하는 패널들을 보면서 또 다른 감정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상 속의 경험을 꽤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알고보면 ‘남의 생활 엿보기’에서 출발하는 거지만요.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받아들여지고 공감하는 것은 ‘외로움’에서 시작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신없이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일주일간 트렌드를 놓치면 1-2년 뒤쳐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사회가 무섭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끄러운 공간 속에 나 혼자 외톨이같은 생각도 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의 객체로서 나는 누군가의 삶을 엿보면서 그 삶에 공감하고 혹은 놀라기도 하면서 하나의 공동체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라는 책은 사실 씨엔티테크 대표이자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현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 전화성 대표님이 쓴 책입니다. 저는 공저로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책의 90%이상의 경험이 전대표님의 지난 20여년 가의 기업 경영에서 얻은 인사이트, 투자에서의 수많은 사례, 투자와 이어진 스타트업 창업자들과의 인연들이 녹아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었죠.
개인적으로 제가 8년 전에 이 책을 알았다면 이라는 아쉬움과 이제서라도 나와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속에 나온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을 쓰고 오늘 글은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매주 수 많은 기업의 IR 자료를 받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보육하는 회사들의 IR Deck에서부터 저희 회사 메일로 들어오는 자료까지 합치면 상당합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메일은 100% 제 손을 거칩니다. 한 기업도 누락되는 일 없이 보는 것을 제 나름의 원칙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의 보육 프로그램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반 창업기업을 위해 2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매주 토요일 줌 온라인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회사 메일로 접수된 IR 자료를 바탕으로 토요일에 온라인으로 창업자를 만나 10분씩 자료의 포인트만 짚어주는 미팅을 했던 거죠. 토요일에 4시간씩 연속으로 진행했으니 주당 대략 24개 정도의 스타트업 창업자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팅이 1분씩 밀려 열 댓번째 순서로 미팅을 대기하던 스타트업 창업자가 8분을 기다렸다가 나갔습니다. 다시 안내를 했지만 오히려 들어오지 않더니 이메일로 약속을 어겼다고 항의를 했던 겁니다.
그 때 사실 좀 속상했어요. 제가 금전적인 이득도 없고 오히려 제 시간을 쪼개어 창업자를 만나려던 순수한 의도가 왜곡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창업자는 자신의 8분이 빼앗겼다고만 생각하지, 상대방의 8분에 대해서는 존중하지 못했던 겁니다. 이후 저는 몇 번의 유사한 상황을 겪고 IR 자료를 받으면 서면 회신으로 의사소통을 변경했어요.
프랑스에서는 ‘매너’를 삶을 아름답게 사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삶을 아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살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은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바이올린처럼 전체를 리드하는 악기가 있을 수도 있고, 소리소문없이 조용하지만 든든하게 받쳐주는 더블베이스도 있는 겁니다. 이렇게 모든 악기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아름다운 곡이 완성되고, 그것이 곧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창업자와 투자자의 만남도 이와 동일하게 ‘매너’로 시작해서 ‘매너’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인연으로 이어지고 관계가 맺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에서 ‘매너’있는 태도가 참 중요합니다. 상대를 배려하는마음에서 아름다운 삶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매너’라는 단어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매너는 IR 발표 현장에서도 참 많이 드러납니다. 발표 자리에서의 매너는 창업자와 투자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형성이 됩니다..”
#투자자의생각을읽어라 #스타트업 #투자 #IR #이은영대표 #마케터의시선 #마케돈 #리브랜드 #leebrand #리브랜드연구소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혹시 2001년에 나왔던 영화 <왓 위민 원트>를 본 적 있나요?
멜깁슨이 광고기획자로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물의 영화였는데요, 저는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 기억으로 최소 3번은 봤던 것 같아요.
(출처: 나무위키)
멜깁슨이 화장실에서 드라이기를 쓰다 감전이 되어서 기절했다 깨어보니 여성들의 속마음이 들린다는 컨셉인데요. 그로 인해 멜깁슨은 여성을 타깃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광고주들 앞에서 PT를 하면 계속 딜을 따내게 되는 ‘승승장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연애를 할 때에는 상대방이 마음을 읽어 연애가 더욱 개선될 수도 있고, 사업에서 거래를 할 때에는 거래 상대방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어떨까요?
투자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더 자신있게 IR을 할 수 있고,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함으로써 투자자들을 혹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3번(시드투자-시리즈A-시리즈B)의 투자 유치를 하게 되었는데요. 금융권에서 직장생활을 오래하다 스타트업을 시작했을 때 사실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금융권 인맥도 있고 하니 펀딩은 문제 없겠지? 라는 자만심도 있었죠.
그러나 증권사가 스타트업의 투자 단계에 참여하는 건 기업이 성장하고 IPO 단계로 갈 조짐이 보일 때라는 걸 알게되고, 본격적인 초기투자 액셀러레이터(AC), 벤처캐피탈(VC) 등을 만나서 IR을 진행했었습니다. 처음 제대로 창업을 하다보니 모든 게 엉성하고 구멍 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리즈 A 때에는 정말 20개 정도의 VC를 만나 PT를 했는데 죄다 물을 먹었죠.
저는 그 때 VC 들에게 물어봤어요. 도대체 내 PPT에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가? 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들이 궁금했던 부분, 미진했던 설명을 보완해 6번 정도 IR DECK을 업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투자를 받고 어떠한 포인트에 집중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얻었던 인사이트가 있다면, IR을 할 때 계속 거절을 받게 되면 심란해 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냥 “도대체 쟤는 무슨 생각으로 안된다는거야?” 라고 반문을 해보는 겁니다.
“도대체 왜 내 발표가 설득력이 없었지?” “내 기술이 문제일까? BM이 문제일까?” 이런 질문들을 투자자에게 던져보는 겁니다. 그럼 의외로 그들이 쉽게 생각을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사업을 하면서 잘될 때도 있었고 힘든 때도 너무 많았고 중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울컥 솟아오를 때도 있었지만, 어찌됐건 하다보니 8년차에 접어들었더라고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의 지식 수준, 경험치를 갖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사업도 운영하고 조직 매니지먼트도 하고, 투자자 앞에서 IR 도 능수능란하게 할텐데… 라고 말이죠!
투자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저는 최근 다양한 초기 스타트업을 보육, 육성하는 기업, 즉 액셀러레이터들과 함께 협업해 컨설팅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지난 3년동안 600개 넘는 초기 스타트업을 만났더라고요.
투자자 옆에서 투자자들이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고, IR 발표를 들을 때 어디에 의문을 갖는지 계속 지켜보다보니, 막연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는구나 라고 여기던 어느날, 씨엔티테크(현재 AC 액셀러레이터 투자 건수 부문 4년 연속 1위 기업)의 대표님이 ‘투자자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실리콘밸리에 출장을 갔을 때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투자자들과 기업을 보는 관점, 스타트업에 대한 접근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더니 대체로 비슷한 사고를 하고 있더랩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너무 신선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대표님께 훅 던져봤죠.
“ 지금 그 생각들을 책으로 엮으면 어때요?”
그리고 최근에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가 출간되었는데, 저는 이 책을 제가 창업을 했던 바로 그 때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투자자가 갖는 4가지의 ‘WHY(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투자자의 질문은 이런 겁니다.
“WHY YOU”
“WHY NOW”
“WHY THIS IDEA”
“WHY ME”
(출처: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즉 한글로 풀어 설명하자면,
“왜 당신에게 투자를 해야 하나요?”
“왜 지금 투자를 해야 하나요?”
“왜 이 아이디어에 투자를 해야 하나요?”
“왜 나에게 투자를 받아야 하나요?”
이러한 화두에서 출발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사실 스타트업들이 그렇게 궁금했던 질문들입니다.
왜 당신에게 투자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하기 위해 스타트업은 어떠한 이야기를 IR에 담아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고, 투자자의 관점에서 내가 가진 잠재력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중요한 인사이트를 주죠.
왜 지금 투자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은 사실 기업의 성장 단계와 맞물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극초기 단계로 아이디어가 최소테스트를 할 수 있는 기준, MVP(minimum viable product) 상태일 때, 기업이 시장에 제품을 내놓아 매출을 만드는 성장 단계일 때 받아야 하는 기업의 가치(밸류에이션)와 투자 단계는 다릅니다. 창업자에게는 나의 위치를 고민해보고, 나는 투자자들에게 어떠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할지 단계별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함을 이야기해주죠.
(출처: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IPG 로드맵 그림)
왜 이 아이디어에 투자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은 스타트업이 도전하는 시장은 성장하는 시장인지, 기업의 핵심역량은 높은지를 함께 고민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책에서는 보스턴컨설팅의 전략인 BCG 매트릭스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기술력이 어마어마하게 뛰어난데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해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어떤 아이디어는 시장의 니즈와 딱 맞아 떨어지면서 무섭게 성장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내 아이디어가 고객에게 받아들여지는 시장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사이트가 있습니다.
(출처: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투자자는 사실 ‘최초의 제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초로 시장에서 수용하는 제품’을 더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왜 나에게 투자를 받아야 하나요? 이 질문도 사실 재미있습니다. 투자자들도 고민을 하는 거거든요. 스타트업 창업자가 여러 투자자들이 있는데 왜 하필 나에게 투자를 받으려 할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이익이 될까?에 대한 생각도 한다는 거죠.
스타트업 창업자 입장에서 투자기관을 골라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하고, 그만큼 투자자도 매력적인 강점을 창업자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에 ‘스마트 머니’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바로 스마트 머니는 “돈에 붙은 똑똑함”을 의미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는 4가지 WHY(왜) 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서, 그렇다면 창업자가 IR DECK을 잘 쓰려면 어떤한 단계로 구성하면 좋은지? 발표를 할 때에는 어디에 강조를 두면 좋은지, 혹은 발표 장표에서 어떤 부분에 투자자가 질문을 던지는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출처: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
사실 ‘투자’에 대한 니즈가 높은 기업이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책이라 생각이 될 정도죠!
이와 관련하여 마케터의 시각에서 분석해 보자면 ‘생각 엿보기’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고 싶습니다.
제가 초반에 이야기한 <왓 위민 원트> 영화를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건 생각해보면 컨셉이 ‘남의 생각을 훔쳐보기’ 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이미 너무나도 익숙하게 오랜 시간 ‘관음증’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관음증이란 ‘타인의 사적인 활동을 몰래 보는 것’ 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는데요. 얼마나 많은 현장에서 이러한 컨셉이 인기를 끄는지 알면 놀랄겁니다.
시청률 상위를 차지하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 <나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미운오래새끼>를 비롯해 수많은 싱글들의 매칭 프로그램의 기본 컨셉은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기”입니다.
나혼자 산다만 따져봐도 각 연예인들의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어떤 집에 살며 어떤 음식을 차려 먹는지를 살펴보고, 그 영상을 패널이 또 나와서 그 장면을 보고 리액션을 하는 그 장면을 시청자가 보고 웃고 울고 합니다.
TV 속의 TV 속의 또 다른 TV 안에 들어간 3중 구조로 되어 있어 시청자는 그야말고 ‘신’의 관점인 전지적 시점에서 예능을 바라보는 거죠. 그래서 시청자는 연예인의 일상을 보기도 하고, 그 일상에 토를 달거나 리액션을 하는 패널들을 보면서 또 다른 감정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상 속의 경험을 꽤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알고보면 ‘남의 생활 엿보기’에서 출발하는 거지만요.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받아들여지고 공감하는 것은 ‘외로움’에서 시작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신없이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일주일간 트렌드를 놓치면 1-2년 뒤쳐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사회가 무섭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끄러운 공간 속에 나 혼자 외톨이같은 생각도 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의 객체로서 나는 누군가의 삶을 엿보면서 그 삶에 공감하고 혹은 놀라기도 하면서 하나의 공동체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라는 책은 사실 씨엔티테크 대표이자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현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 전화성 대표님이 쓴 책입니다. 저는 공저로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책의 90%이상의 경험이 전대표님의 지난 20여년 가의 기업 경영에서 얻은 인사이트, 투자에서의 수많은 사례, 투자와 이어진 스타트업 창업자들과의 인연들이 녹아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었죠.
개인적으로 제가 8년 전에 이 책을 알았다면 이라는 아쉬움과 이제서라도 나와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속에 나온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을 쓰고 오늘 글은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매주 수 많은 기업의 IR 자료를 받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보육하는 회사들의 IR Deck에서부터 저희 회사 메일로 들어오는 자료까지 합치면 상당합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메일은 100% 제 손을 거칩니다. 한 기업도 누락되는 일 없이 보는 것을 제 나름의 원칙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의 보육 프로그램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반 창업기업을 위해 2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매주 토요일 줌 온라인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회사 메일로 접수된 IR 자료를 바탕으로 토요일에 온라인으로 창업자를 만나 10분씩 자료의 포인트만 짚어주는 미팅을 했던 거죠. 토요일에 4시간씩 연속으로 진행했으니 주당 대략 24개 정도의 스타트업 창업자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팅이 1분씩 밀려 열 댓번째 순서로 미팅을 대기하던 스타트업 창업자가 8분을 기다렸다가 나갔습니다. 다시 안내를 했지만 오히려 들어오지 않더니 이메일로 약속을 어겼다고 항의를 했던 겁니다.
그 때 사실 좀 속상했어요. 제가 금전적인 이득도 없고 오히려 제 시간을 쪼개어 창업자를 만나려던 순수한 의도가 왜곡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창업자는 자신의 8분이 빼앗겼다고만 생각하지, 상대방의 8분에 대해서는 존중하지 못했던 겁니다. 이후 저는 몇 번의 유사한 상황을 겪고 IR 자료를 받으면 서면 회신으로 의사소통을 변경했어요.
프랑스에서는 ‘매너’를 삶을 아름답게 사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삶을 아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살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은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바이올린처럼 전체를 리드하는 악기가 있을 수도 있고, 소리소문없이 조용하지만 든든하게 받쳐주는 더블베이스도 있는 겁니다. 이렇게 모든 악기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아름다운 곡이 완성되고, 그것이 곧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창업자와 투자자의 만남도 이와 동일하게 ‘매너’로 시작해서 ‘매너’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인연으로 이어지고 관계가 맺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에서 ‘매너’있는 태도가 참 중요합니다. 상대를 배려하는마음에서 아름다운 삶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매너’라는 단어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매너는 IR 발표 현장에서도 참 많이 드러납니다. 발표 자리에서의 매너는 창업자와 투자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형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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